Christ Church Melaka |
'말라카'라고 하면 일군(一群)의 빨간색 건물들을 총칭하는 '스타다이스(Stadthuys)'의 모습을 먼저 연상하게 된다.
네덜란드 점령기에 세워진 총독 관저와 그 주변으로 온통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 쓴 건물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사람들은 '스타다이스'라고 부른다. 이제 옛 총독 관저 자리엔 말라카의 역사와 민속을 소개하는 박물관이 마련되어 있다.
말라카를 이야기하게 되면 다른 건 다 제처두고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누가 말라카를 걸어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던가 ?? 어떤 넘이 흐흑~~
이 말 믿고 덤볐다가 엄청 고생했다. 말라카는 결코 걸어서 돌아보기에 적당한 관광지는 아니다.
K.L.(쿠알라룸푸르를 말함)에서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6시 30분쯤 말라카 시외 버스정거장에 도착했다.
말라카행 버스를 타기 전에, 선입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의 생각 속에 자리잡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또 한가지의 사례를 경험했다.
K.L.에 있는 Pudu Raya 버스 터미널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 번 태국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밤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Hot Yai로 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버스 터미널과는 육교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위치한 주유소 앞에서 버스를 탄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버스는 터미널 밖, 어딘가에서 타려니 생각했다.하지만, 이리저리 기웃거려봐도 도무지 모르겠어서 결국, 매표소 옆 안내 방송을 해 주는 곳에서 알아보니 말라카행 버스는 터미널이 있는 건물 지하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었다(그런데, 지하 승차장에서도 헤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음).
어쨌든 말라카 까지는 제대로 왔는데, 생각외로 말라카 시외 버스 터미널이 작았다.
예전 우리나라 시내버스 종점 정도나 될까 ? 그런 외부 공간에 박스형 매표소가 강가를 따라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주위로 호객꾼들이 진을 치고는 외지로부터 온 외국인 여행객들을 낚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 숙소는 정했느냐?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알아봐 주겠다'며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던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콧수염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가 일품이다.
"Do you think I'm trying to cheat you in public? Even an old lady tried to help you !"
(당신은 내가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기를 치려고 한다고 생각하냐 ? 심지어 나이든 아줌마도 당신을 도우려고 한다는 내용)
아무래도 바가지를 쓸 것 같아서... 졸졸 따라다니며 도와주겠다는 그 아저씨를 무시하고는, 주위에 있는 다른 아주머니한테 물어 보았더니(알고 보니 이 아줌마도 한 통속), 그래도 포기않고 따라다니다가 끝으로 한 마디 던진 것이다. 이 아저씨 영어 발음은 좀 후져도, 문법적으로는 제대로 배운 사람 같았다. 암튼 한국어로 쓰여진 관광가이드 책의 일부분도 가지고 다니면서 한국에서 왔다니까 그걸 펼쳐 보이며 호객행위를 하는 통에 떼어 놓느라 애 먹었다.
서둘러 도망치듯 우선은 버스 터미널 뒤로 난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너오긴 했는데...
가이드 북에서는 말라카가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로 돌아보기에 충분하다고 쓰여 있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걸어 보니 장난 아니다. 날씨가 선선한 곳이라면 몰라도 그 더위에 배낭메고 뙤약볕 아래, 한 번 걸어보라~ 그럼 알 게 된다.
게다가 지도를 보고 방향 잡기도 역시 만만치 않다. 결국 가고자 했던 '스타다이스' 방향과는 정반대로 얼마를 걸어가다가, 사람들을 만나 길을 물었다. 말이 잘 안 통한다. ㅠ.ㅠ 7시가 다 되어 가지만, 아직은 후덥지근하기만 한 날씨에 길을 잃은 거같다. 이 사람 저 사람 거리에서 만난 현지인들을 붙잡고 묻다가, 드디어 중년의 몸이 통통하신 아저씨를 만났다. 스타다이스 가는 방향을 묻자 반대 방향에 있다며 어떻게 가려고 하느냐고 물어오셨다. 그래서 걸어갈 생각이라니까, 무리라며 자기 차로 태워다 주마 하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거다. '이걸 순수한 호의로 받아 들여야 하나, 아니면 그냥 태워다 준다고 하고서는 나중에 가서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고 돈 내라고 달려드는 건 아닌가?' 별 다른 볼 일도 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시길래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지만... 별 일이야 있겠냐 싶어 우선은 차에 탔다.
사실은 숙소를 찾으려면 스타다이스를 지나서 좀 더 가야 하지만, 우선은 그냥 스타다이스로 간다고 했다. 그곳이 어디를 가든 중심이 되는 곳이니까...
차는 10분 정도를 달려서 드디어 스타다이스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저 '여기가 스타다이스다. 이제 괜찮겠냐?'는 걱정뿐이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누군가 내게 내민 따듯한 손을 순간이나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본,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아저씨께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에 만나는 선한 사마리아사람(Good Samaritan)의 이야기는 나 역시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하게 만들고, 그 고장...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아름다와 보이게 한다.
시계탑과 풍차(스타다이스) |
스타다이스에서부터는 그래도 움직이기가 어렵지 않았다. 스타다이스에 있는 작은 풍차 뒤 편으로 나 있는 다리를 건너면.. 중국 색이 짙은 Tun Tan Cheng Lock 거리와 Hang Jebat 거리가 나란히 뻗어 있다. 이곳은 많은 골동품 상점들과, 'Baba Nyonya Heritage(바바 논냐의 집 - 바바는 남자를, 논냐는 여자를 말함)', Cheng Hoong Temple등과 같은 관광 포인트 외에도 말레이시아 내에서는 가장 맛 좋은 카레 가루(Curry Powder)를 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스타다이스와 거리상 가까워, 이 곳에 숙소를 정하면 관광하기에는 좋지만... 숙박료가 무척이나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인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무리다.
스타다이스에서 Farmosa쪽으로 가지 않고, 바다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으면 포루투칼 범선 모양의 해양 박물관을 지나게 된다.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왼쪽으로는 넓다란 잔디위에서 운동이나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로와 보이는 '팔라완 광장(Taman Pahlawan)'이, 오른쪽으로는 Mahkota Parade와 같은 고급 쇼핑 센터를 보게 된다. 그 길이 끝나는 다음 블록부터가 바로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들이 많은 지역이다(우측 골목들 쪽으로 모여 있음).
하루 묵을 잠자리를 찾기 위해 처음 찾은 곳은 Sunny Guesthouse였다. 이곳은 분위기는 좋은데, 장기 투숙자가 많아서 인지 괜찮은 방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주변에 다른 게스트 하우스 간판을 몇 개 보았기 때문에, 우선은 다른 곳을 알아 본다며 나왔다. 그리고 간 곳이 화교가 운영하는 'Grand Star'라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먼저, 방을 구경했는데... 방이 큰 것이 그런 대로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정말 웃지 못할 사건이 잠시후에 벌어질 줄이야...
Rm35 하는 방을 보러 2층 카운터에서 아래 층으로 내려갔는데, 구경을 하는 중에 그만 거의 손가락 두 개 합친 것 만한 바퀴벌레가 눈 앞에 나타난 거다. 바퀴 벌레닷!
'wow.. roach!!' 나의 경악과 돌발 상황에 당황한 주인... 'no problem'이라며 위기 탈출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순간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신속한 동작으로 슬리퍼 한 짝을 벗어서는 냅다 허둥대는 바퀴벌레에 멋지게 일격을 날린다. 전광석화 같은 주인의 단 한 방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는 바퀴벌레...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메달의 색깔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주인은 약간의 틈이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곧바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덥석... 손을 내밀어서는 불의의 일격에 운명을 달리한 바퀴벌레의 시신을 수습하고, 곧바로 마지막 기술에 들어가는데..
"I gurantee this roach is the last one!"
(한 손엔 아직 죽은 바퀴벌레를 쥐고 있는 상태로 이 바퀴벌레가 마지막 바퀴벌레란 사실을 내가 보장한다는 그의 말이 얼마나 우스운 장면인가 상상해 보라... 그게 마지막 바퀴벌레라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
울지도 그렇다고 웃지도 못할 묘한 분위기였다. '그래 우선은 실리(實利)다'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35링깃을 달라고 했는데... 많은 돈은 아니라도 이곳에 처음 들어서부터 보아온 분위기로 봐서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더구나 바퀴벌레 사건까지 있었으니... 그냥 갈까 말까 하는 듯 하다가, 하루 묵는데 25링깃으로 해 달라고 제안을 했다. 주인으로서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은 다 보여준 상태라 최선을 다 한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안되는뎅.", "딴데 가야겠넹", "그러자. 그럼"
(이 이야기와 앞 서 '버스 정류장의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는 여행 중에도 두고두고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포르투칼 마을의 간이 선착장 |
다음 날 아침엔 Equatorial 호텔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포루투칼 마을(Portuguese Settlement)로 갔다(버스요금: 거리에 따라 50~80센트 정도). 말라카의 외곽쪽에 있는 곳이라 그곳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로 시내 중심을 보는 것이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17번 버스라고 번호를 먹인 것 자체도 좀 우습긴 했다. 왜냐면 다른 버스는 본 기억이 없었으니까.. 이 버스의 종점은 시외 버스 터미널의 바로 옆 쪽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시내버스 종점에서 Hang Jebat 거리를 지나 스타다이스와 해양박물관을 거쳐서 포르투칼 마을까지 왔다가 거기서 턴을 해서 되돌아 가는 것이 이 버스의 노선이다.
길이가 400여 미터 되어 보임 |
멀리 뒤쪽은 간척지와 중심지 |
파모사(Famosa) |
말라카 민속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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